아래는 계용묵 작가의 소설 『백치 아다다』에 대한 글입니다.
백치라는 이름의 순결함 – 계용묵의 『백치 아다다』를 읽고
삶의 모든 소음이 잠시 멈춘 듯한 고요한 감정이 밀려올 때가 있다. 그때 나는 문득, 『백치 아다다』를 떠올린다. 이 소설은 시대의 거친 물결에 휩쓸리는 한 여인의 이야기이자, 인간됨의 본질을 묻는 문학적 질문이다. 계용묵 작가는 1935년이라는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시대에 이 짧지만 강렬한 단편소설을 통해 순결함과 비극, 그리고 진정한 인간성에 대한 통찰을 남겼다. 오늘은 『백치 아다다』를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순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자 한다.
1. 아다다, 그녀는 백치인가?
‘백치(白痴)’라는 단어에는 흔히 무능력하거나 어리석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하지만 소설 속 아다다는 그러한 의미를 단순히 수용하지 않는다. 작가가 그녀에게 부여한 ‘백치’라는 이름은 오히려 문명과 탐욕, 이기심에 찌든 인간 사회에서 오직 순수함 하나로 살아가는 존재를 상징하는 아이러니한 장치이다. 아다다는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장애가 있지만, 그 마음만은 누구보다 맑고 따뜻하다. 그녀는 주변의 기대를 충족시키지는 못하지만, 누구에게도 악을 품지 않고 세상을 향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손을 내민다.
이러한 아다다를 작가는 동정이나 연민이 아니라 존경에 가까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는 곧, 소설이 단순히 ‘불쌍한 여인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고, 인간 존재의 본질과 사회가 요구하는 ‘정상성’의 허위성을 들춰내는 깊이를 가진다는 의미다.
2. 혼인과 거래 – 여성의 존재와 사회 구조
아다다는 어느 날 도박에 빠진 아버지의 결정으로 김 선비의 아들과 혼인하게 된다. 그러나 그 결혼은 사랑이나 이해가 바탕이 된 것이 아니라, ‘말 못하는 며느리’라는 이유로 지참금을 낮출 수 있는 계산의 결과였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여성이 가족 내부에서 얼마나 쉽게 상품화될 수 있는지를 목도하게 된다. 아다다는 그저 침묵 속에 자신이 ‘거래 대상’이 되었음을 받아들일 뿐이다.
더구나 남편은 점차 그녀를 외면하고, 결국에는 다른 여자에게로 떠나간다. 아다다는 그럼에도 끝까지 남편을 기다리며, 그를 사랑하고 기억한다. 소설은 이 과정을 통해 여성의 희생과 헌신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무가치하게 소비되는지를 고발한다. 동시에 그러한 희생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아다다의 마음을 조용히 조명하며, 그 존재의 강인함을 드러낸다.
3. 돈과 인간성 – 문명 비판의 시선
작품 후반부에서 아다다는 자신의 유일한 자산인 패물을 팔기 위해 장터에 나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기를 당하고, 길거리에서 쓰러지고 만다. 아무도 그녀를 제대로 도와주지 않으며, 오히려 가진 것 없는 자의 절망이 무관심 속에 침몰해간다.
계용묵은 이러한 장면을 통해 인간의 탐욕과 이기주의가 팽배한 자본주의 사회의 민낯을 드러낸다. 아다다의 순수는 이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그녀는 거래의 논리 속에서 밀려나고, 동정조차 받지 못한다. 이 지점에서 소설은 문명 자체에 대한 깊은 비판을 담고 있다. ‘말을 못하는 아다다’는 사실상 이 사회와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모든 순수한 존재들의 은유다.
4. 백치, 인간성의 거울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처럼, 계용묵의 『백치 아다다』 또한 제목에 이미 강한 역설을 내포하고 있다. 누군가의 눈에는 백치로 보이는 그녀가, 실은 진정한 인간성을 간직한 존재라는 사실이 작품 전체를 통해 천천히 드러난다. 말은 할 수 없지만, 그녀는 ‘사랑’할 줄 알고, ‘기억’할 줄 알고, ‘기다림’이라는 고귀한 감정을 지닌다.
그녀는 세상의 논리와 계산에 익숙하지 않고, 거짓을 모른다. 오직 한결같은 마음으로 남편을 기다리며, 마지막까지 그를 향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는 문명과 문화, 교육과 지식을 넘어선 어떤 존재의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이러한 아다다를 통해 계용묵은 우리에게 조용히 묻는다. ‘진짜 백치는 누구인가?’ 사회의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인가, 아니면 그 기준 자체를 의심하지 않는 우리들인가?
5. 문학의 울림 – 아다다의 말 없는 외침
『백치 아다다』는 분량상 짧은 단편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와 정서는 오랜 여운을 남긴다. 아다다는 말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의 존재 자체가 하나의 강력한 문학적 발화이다. 인간의 순수함과 사랑, 신뢰에 대한 믿음은 결코 언어로만 증명되는 것이 아님을 그녀는 보여준다.
그녀의 침묵은 어쩌면 우리가 외면해 온 수많은 목소리 없는 존재들의 외침이기도 하다. 사회의 중심에서 멀어진 이들, ‘정상’이라는 기준에서 배제된 이들, 그러나 누구보다 뜨겁게 사랑하고 고통받는 이들. 계용묵은 이 소설을 통해 그들을 조명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문학이 할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일이었다.
6. 마무리하며 – 오늘의 아다다를 생각한다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수많은 ‘아다다’를 마주한다. 다만 그녀들은 더 이상 소설 속 인물이 아니라, 현실 속 이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민, 장애인, 노인, 혹은 단지 ‘다르다’는 이유로 침묵당한 사람들. 그들은 여전히 말이 없고, 그만큼 외롭다.
『백치 아다다』는 우리가 그러한 존재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를 묻는다. 과연 우리는 그들의 ‘말 없음’을 무시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 속에 담긴 깊은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하는가?
계용묵은 문학을 통해 조용하지만 강렬한 질문을 남긴다. ‘정상’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을 평가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인간다움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 아다다의 순수한 마음은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울림이 있다. 그리고 그 울림은 우리 삶 속에서 더 큰 공명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나는 간절히 바란다.
[작성자: 문학으로 숨 쉬는 하루, 블로거 민서]
📚 오늘의 문학 한 문장
“아다다는 말을 할 줄 몰랐지만, 마음으로 말하는 법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 함께 읽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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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 『백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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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봄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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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여러분은 어떤 ‘아다다’를 알고 있나요? 댓글로 생각을 나눠주세요.
계용묵(桂鎔默, 1904년 2월 2일 ~ 1961년 12월 9일)은 일제강점기부터 1950년대까지 활동한 대표적인 한국 근대 단편소설가입니다. 그는 삶의 비극과 인간 존재의 본질을 섬세하면서도 절제된 문체로 그려낸 작가로 평가받습니다. 특히 장애인, 하층민,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현실 비판 의식을 지닌 작품들로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1. 생애 개요
계용묵은 함경북도 경성(鏡城)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문학적 재능이 뛰어났습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도 배움을 이어갔으며, 일제강점기라는 억압적 시대 상황 속에서도 현실을 직시하는 문학을 지향했습니다. 도쿄 유학 중 귀국하여 교사와 언론인 등 다양한 직업을 경험하며 문학 활동을 지속했습니다.
1950년대에는 한국전쟁이라는 참혹한 현실 속에서도 창작을 이어가며,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고독과 구원에 대해 탐구하는 작품들을 발표했습니다.
2. 문학적 특징
계용묵의 작품 세계는 다음과 같은 특징으로 요약됩니다.
(1) 단편의 미학
그는 장편보다는 단편소설을 주로 발표했으며, 인물의 심리와 사건을 집약적으로 그려내는 데 뛰어난 재능을 보였습니다. 인물의 성격과 상황을 경제적인 문장으로 표현하면서도, 깊은 감정과 철학적 질문을 녹여냅니다.
(2) 비극적 인간상과 연민
계용묵은 장애인, 빈민, 사회적으로 소외된 인물들을 중심에 세웁니다. 그들에게 연민이나 동정을 넘어, 인간의 고유한 존엄성과 가치를 부여하려는 작가적 의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대표작 『백치 아다다』는 그러한 작가의 시선을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3) 도덕적 성찰과 사회 비판
그의 작품들은 단순한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서, 당시 사회의 부조리와 인간 내면의 탐욕을 날카롭게 드러냅니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은 냉소적이거나 공격적인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조용하고 담담한 서술 속에서 오히려 더 큰 울림을 줍니다.
3. 주요 작품
작품명 | 발표연도 | 특징 |
---|---|---|
백치 아다다 | 1935 | 언어장애를 지닌 여성의 순수한 삶을 통해 인간성과 문명 비판을 동시에 제시한 대표작. |
병풍에 그린 닭 | 1936 | 예술과 현실의 괴리를 풍자한 작품으로, 예술가의 고뇌가 담겨 있음. |
장벽 | 1940 | 인간의 내면적 고독과 정신적 소외를 상징적으로 형상화한 단편. |
모범경작생 | 1947 | 해방 이후 변화한 사회 속 인간 군상의 탐욕과 허위성을 비판. |
4. 문학사적 의의
계용묵은 이태준, 김동인, 현진건 등과 함께 1930~40년대 한국 단편소설의 황금기를 이끈 작가로 평가받습니다. 그의 소설은 당시 한국 근대문학이 짊어졌던 계몽과 사실주의적 사명을 담고 있으면서도, 인간 내면의 깊이를 성찰하는 문학적 깊이가 돋보입니다.
그의 작품은 교과서에도 수록되며 오랫동안 널리 읽혔고, 한국 문학의 중요한 고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5. 계용묵의 문학적 유산
계용묵은 작가로서의 명성을 크게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의 작품들은 묵직한 문학적 울림을 남겼습니다. 특히 그의 작품이 담고 있는 소외된 자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시대 비판적 의식은 오늘날에도 유효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는 “문학은 인간에 대한 이해와 연민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태도를 끝까지 견지했으며, 이는 지금도 많은 독자와 작가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계용묵은 화려하거나 자극적인 이야기 대신, 조용한 감동과 인간적인 시선을 통해 한국 문학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작가입니다. 그의 작품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진정한 문학의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그가 남긴 문장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위로와 통찰을 전합니다.
추천 계용묵 작품 읽기 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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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치 아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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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에 그린 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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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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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경작생
🖋️ “계용묵을 읽는다는 것은, 조용히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 문학 블로거 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