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전영택 작가의 단편소설 『화수분』에 대한  글입니다.


세상에 진짜 ‘화수분’은 존재할까? — 전영택의 단편소설 『화수분』을 읽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본다. 돈이 무한히 나오는 항아리, 한 번만 손에 넣으면 더 이상 근심하지 않아도 될 무한한 자원, 혹은 행운의 상징. 그런 바람을 아주 직접적으로 형상화한 상징물이 바로 ‘화수분(和樹盆)’이다. 전영택의 단편소설 『화수분』은 바로 이 기이한 상상과, 그 상상이 한 인간의 인생을 어떻게 잠식해 나가는지를 날카롭게 그려낸 작품이다.

이 글에서는 소설 『화수분』의 줄거리와 인물 분석, 주제 의식, 작품의 상징적 의미,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작품의 개요와 시대적 배경

전영택(田榮澤, 1894~1968)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격동의 시기를 거친 한국 문학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는 기독교적 신앙을 바탕으로 인간의 내면과 사회의 모순을 사실적으로 묘사해왔다. 『화수분』은 1930년에 발표된 그의 대표 단편소설로, 식민지 시대의 도시 빈민층의 삶과 욕망, 도덕의 붕괴와 환상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다.

‘화수분’이라는 소재 자체가 설화적 전통에서 온 것이지만, 이 이야기를 통해 전영택은 물질적 욕망, 인간 심리, 가족 관계의 파괴 등 근대 도시인의 정신적 혼란을 고발한다.


2. 줄거리 요약

주인공 ‘김첨지’는 가난한 도시 빈민이다. 그는 우연히 “화수분”이라는 전설적인 항아리에 대해 듣게 된다. 화수분은 어떤 물건을 넣어도 다시 그 물건이 나오는 신비한 항아리다. 곧 그는 어느 부잣집에서 하인으로 일하게 되며, 그 집에 실제로 화수분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주인은 그 화수분을 소중히 여기며 철저히 감시하지만, 김첨지는 도둑질을 감행한다. 그는 집으로 그 항아리를 가져오고, 기대에 부풀어 생선이나 물건을 넣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항아리는 더 이상 화수분이 아니었던 것이다.

결국 그는 실망과 분노, 좌절 속에서 항아리를 깨뜨리고 만다. 가족은 궁핍과 절망 속에 빠지고, 그의 삶은 더욱 추락하게 된다.


3. 인물 분석

김첨지

이 소설의 중심 인물인 김첨지는 빈곤과 절망의 끝자락에 선 인물이다. 그는 처음엔 착실히 살아보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너무 높다. ‘화수분’이라는 환상은 그에게 유일한 탈출구이며 희망이었다. 그러나 그 희망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망상이었고, 그 대가로 그는 모든 것을 잃게 된다.

부잣집 주인

그는 화수분을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으나, 그것을 이웃이나 가난한 자들과 나누려 하지 않는다. 그는 소유를 통해 지배력을 유지하려는 자본주의 상징이다. 결국 그의 소유욕은 도둑질을 유발하고, 자기 손으로도 지킬 수 없는 허상의 파괴로 귀결된다.


4. 상징과 주제 의식

① 화수분: 인간의 끝없는 욕망

화수분은 마르지 않는 샘, 즉 ‘무한한 자원’을 상징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에 대한 맹목적 믿음은 인간을 타락하게 만든다. 소설은 ‘무한한 욕망’을 좇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그 욕망이 어떻게 파멸로 이어지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② 도둑질: 윤리의 붕괴

김첨지는 본래 악인이 아니다. 하지만 배고픔과 가난이 그의 도덕성을 무너뜨린다. 이는 당시 식민지 조선에서 많은 서민들이 겪던 현실이며, 작가는 이를 통해 사회구조적 모순과 빈곤의 악순환을 비판한다.

③ 항아리의 파괴: 환상의 종말과 현실의 인식

김첨지가 화수분을 깨뜨리는 장면은 중요한 전환점이다. 그 순간 그는 환상에서 깨어나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소설은 이 파괴를 통해 인간이 끝없이 좇는 환상이 얼마나 덧없고 위험한지를 극적으로 드러낸다.


5. 문체와 서술 방식

전영택의 문체는 간결하고 사실적이다. 인물의 심리 묘사보다는 외적인 행동과 상황 묘사를 통해 내면을 암시하는 방식이 탁월하다. 특히 도시 빈민의 생활 환경 묘사와 김첨지의 행동 변화는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현실감을 안겨준다.

또한, 전통적 설화 요소(화수분)를 근대소설의 서사 구조 안에 끌어들여 상징성과 흥미를 동시에 확보한 점에서 이 작품은 한국 근대문학의 중요한 시도로 평가된다.


6.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화수분’을 꿈꾼다. 주식, 부동산, 로또, 가상화폐, 혹은 한 방에 인생이 바뀔 것이라는 믿음. 하지만 『화수분』은 우리에게 묻는다. 과연 그런 것이 진짜 존재할까? 그리고 그런 환상을 좇다 보면 우리는 무엇을 잃게 될까?

소설은 말한다. 진정한 화수분은 실제로 존재하는 항아리가 아니라, 성실과 절제, 인간 관계 안에서 피어나는 신뢰와 공동체 정신이다. 김첨지가 그 항아리를 훔치지 않고 주인에게 다가가 도움을 요청하거나, 공동체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면, 결과는 달랐을지도 모른다.


7. 맺음말

전영택의 『화수분』은 짧은 분량 속에 물질적 욕망과 인간 심리, 도덕의 붕괴, 환상과 현실의 충돌을 날카롭게 담아낸 수작이다. 비록 100년 가까이 지난 작품이지만, 오늘날에도 그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 마음속에도 하나쯤은 ‘화수분’을 숨기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다시금 현실을 돌아보고, 참된 삶의 가치를 찾는 계기를 삼아야 할 것이다.


 

전영택(田榮澤, 1894년 8월 18일 ~ 1968년 11월 20일)은 한국 근대문학의 중요한 작가이자 교육자, 언론인, 기독교 사상가로서, 한국 문학 초기의 사실주의와 도덕적 주제를 정착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한 인물입니다. 그의 작품은 종종 기독교적 가치관을 기반으로 인간성과 윤리, 가난과 도덕적 갈등, 사회 구조의 모순을 주제로 삼고 있으며, 특히 1920~30년대 한국 사회의 혼란과 변화 속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민중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냈습니다.


1. 생애와 배경

전영택은 1894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기독교에 입문하였으며, 이는 그의 문학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일본 도쿄의 와세다대학교에서 유학하며 문학적 기반을 쌓았고, 이후 귀국하여 언론 활동과 교육 활동, 문학 창작을 병행했습니다.

그는 서울에서 교사로 활동하며 기독교 계열 학교인 숭실학교, 배재학당 등에서 후학을 가르쳤으며, 문학 활동 외에도 잡지 편집과 번역, 선교 활동에 참여하는 등 다방면에서 활동했습니다. 그의 문학과 인생은 철저히 도덕적, 윤리적 이상에 뿌리를 두고 있었으며, 시대의 혼란 속에서도 인간다운 삶과 신앙의 실천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2. 문학적 특징

전영택의 문학은 크게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닙니다.

● 기독교 사상에 바탕한 윤리적 문학

그는 신앙인으로서 기독교의 사랑, 용서, 구원, 회개 등의 가치를 문학 속에 녹여내려 했습니다. 이는 당대 작가들 중에서도 비교적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게 하였으며, 단순한 현실 고발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합니다.

● 사실주의적 서술과 현실 고발

전영택은 일제강점기의 사회적 불안과 경제적 빈곤, 가족 붕괴, 도덕적 타락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한 절망의 나열이 아닌,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와 회복의 가능성으로 이어지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도덕적 사실주의’라 할 수 있습니다.

● 서민과 빈민의 삶을 주목

그는 부유층이나 영웅적 인물보다는, 가난한 이웃과 비참한 현실에 놓인 소시민, 윤리적 딜레마에 놓인 평범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았습니다. 이를 통해 당시 민중의 고통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였습니다.


3. 주요 작품

전영택은 단편소설을 중심으로 활동했으며, 대표작으로는 다음과 같은 작품들이 있습니다.

● 『화수분』

도시 빈민 김첨지가 전설 속의 항아리인 ‘화수분’을 손에 넣고자 하다가 결국 모든 것을 잃는 이야기. 물질적 욕망과 환상의 덧없음을 그린 상징적인 작품입니다.

● 『천치』

지적 장애가 있는 인물을 통해 순수한 사랑과 인간성, 그리고 그것이 사회에서 어떻게 외면당하는지를 그려낸 소설로, 인간 본성의 선함을 강조합니다.

● 『가난한 이웃』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신앙과 양심을 지키려는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물질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되묻는 작품입니다.

● 『회개』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달은 인물이 신앙을 통해 변화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기독교 소설의 전형으로 평가받습니다.


4. 영향과 평가

전영택은 한국 근대문학 초기 사실주의 문학의 중요한 작가로 평가받습니다. 김동인, 현진건 등이 냉정한 현실 묘사에 주력한 반면, 그는 현실을 바라보되 인간 본성의 회복 가능성, 신앙을 통한 구원의 길을 동시에 제시했습니다.

그의 문학은 또한 한국 기독교 문학의 기초를 닦은 선구적 작업으로 평가되며, 오늘날까지도 도덕적 메시지를 가진 소설의 모범으로 인용됩니다. 특히 윤리적 갈등과 인간 내면의 고민을 섬세하게 포착한 점에서, 단순한 계몽주의 문학을 넘어선 성취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5. 맺음말

전영택은 격동의 시대 속에서도 신앙과 문학의 균형을 지키며, 한국 근대문학에 독자적인 길을 제시한 작가입니다. 그의 작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집니다.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 “가난은 우리를 어떻게 시험하는가?”, “신앙과 윤리는 현실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의 문학은 그 답을 정답처럼 주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오늘의 삶 속에서 다시 그 질문을 하도록 인도할 뿐입니다.